산둥성 칭저우(青州) 용흥사(龍興寺)는 아름다운 칭저우시 윈퉈산(雲駝山) 관광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윈퉈산에 기대어 윈먼을 바라보며 푸른 산에 둘러싸여 있다. 동남쪽에는 누워있는 2,600미터의 천연 불상이 있으며 뒤에는 윈퉈산 석굴 600여 개의 북위 석각 불상이 있어 인간복지이자 영산도장이라 할 수 있다.
용흥사는 옛날에 '정동의 갑사'로 불렸다. 남조 송나라 원가 연간에 생겼으며 북해 태수 유선명(劉善明)이 사택을 절로 삼았고, 북제 무평 4년 황제 고위(高緯)가 남양사(南陽寺)로 이름을 붙였다. 수나라 개황원년에 장락사(長樂寺)로 개칭하여 도장사(道藏寺)라고도 불렀으며, 여황 무측천이 천수(天授) 2년에 대운사(大雲寺)로 이름을 바꿨고 당현종 개원 18년에 용흥사로 개칭하였다. 대문호 북해 태수 이옹(李邕)이 '용흥지사(龍興之寺)'를 대제비(大齊碑)에 새겼는데, 명나라 초기에 파괴되어 비석은 지금 우원(偶園)에 남아 있다. 역사상 용흥사에서는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불교 의학은 널리 보급되었으며 찾아오는 승려들이 끊이지 않았다. 수나라 도장대사는 '섭대승론(攝大乘論)'을 고양하여 지혜를 보이고 명성은 널리 전파되어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96년 용흥사 유적지가 우연히 발견되었고 북위~북송 시기의 각종 불교조상 4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는 20세기 중국의 100대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칭저우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구역을 중국의 여섯 번째 불교문화구역으로 정했다.
2006년 용흥사가 퉈산 동쪽 기슭에 중건되어 부지가 100여 무(畝)이고 건축 면적이 1만 5천여 제곱미터에 달했다. 용흥사 안에 산문전(山門殿), 미륵전(彌勒殿), 대웅보전(大雄寶殿), 천불전(千佛殿), 대운각(大雲閣), 관음전(觀音殿), 지장전(地藏殿), 조사전(祖師殿), 천모전(天母殿), 가람전(伽藍殿), 호법전(護法殿), 나한재(羅漢齋), 지송원(持松院), 용화당(龍華堂), 무진장(無盡藏), 기원(祇園)문화전시구, 적광탑원(寂光塔院), 남죽거사(楠竹居士)기념관과 화룡지(化龍池) 등이 있으며 건축 자체는 웅장하고 우뚝하며 아름다운 기둥에 회랑이 둘러싸여 있고 푸른 나무와 호수가 서로 비추어 평화롭다.
용흥사는 대자대비의 여의보륜왕(如意寶輪王) 관세음보살을 핵심으로 삼아 관음도장을 이루고 있다. 화엄(華嚴)의 원융사상(圓融思想)을 전파하며 보현행원(普賢行願)을 선양하고 부처의 지혜를 이어받는다. 선교병홍, 이계위사, 조계선원, 교종현수, 원돈지관, 정혜등지, 법계위종, 일승원융이다. '화엄경보현행원품'을 수행하는 것을 수업으로 삼고 '화엄경보현행원참'을 자료로 삼으며, '대방광불화엄경 강기'를 듣는 것을 연분으로 삼고 '대방광불화엄경'을 널리 전파하는 것을 오철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삼는다. '생각을 맑게 하며 굳게 믿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교증은 치밀하며, 선법의 묘리와 인생의 실천을 결합시키며, 불법심학, 유심유식, 전식성지, 지성해탈을 강조한다. 용흥사에서는 아침저녁으로 경전을 읽고 종을 울리며 범음이 우렁차고 향불 연기가 피어오르며, 기도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인간세상의 정토가 따로 없다.
해대불국, 성당보찰, 관음현성, 선종도장, 이 역사의 천년고찰은 십방의 부처와 보살들의 수호와 천룡팔부 가람호법의 보호, 그리고 십방 선인들의 공동 지지 속에서 조상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도심을 고수하며 선의를 베풀고 있다. 용흥사는 애국 교의 정신을 계승해 왔으며, 불교의 중국화를 고수해 인간 불교를 널리 전파하고 있다.


